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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순종 다음에 – 무슨 일이?

막 6:45-5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재촉하실 때 그분께 순종하면 주께서 우리를 대 성공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성공의 꿈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주님의 목적은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특별한 목적을 향하여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특별한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과정이라고 부르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목적이라고 부르십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시기를 꿈꾸십니까? 그분의 목적은 ‘지금’ 당신이 주님과 주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풍랑 가운데서 평정을 유지하고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는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특별한 마무리를 향하여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목적은 그 과정입니다. 해변도 보이지 않고, 성공도, 목적지도 없는 가운데서 단지 풍랑 위를 걷고 계시는 주님을 보며 완전한 확신 가운데 머무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훈련은 지금 받아야 하는 것이지 나중에 받으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분의 목적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것이지 미래의 어떤 것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순종에 어떤 일들이 뒤따를지는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에 마음을 쓰다 보면 그릇되게 됩니다. 사람들이 훈련 또는 준비라고 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목적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지금 내 삶의 혼돈 가운데 주께서 그 위를 걸으실 수 있으심을 나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것 외에 다른 것을 더 보려고 한다면 우리는 당면한 현재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순종이 목적이란 사실을 깨달을 때, 다가오는 모든 순간들마다 더없이 귀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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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것을 이해하는 황금율은 지능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어떤 사람이 과학적인 지식을 원한다면 지적 호기심이 그를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을 깨닫고자 한다면 그는 오직 순종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만일 주님의 말씀이 내게 어둡다면 이는 분명히 순종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지적 어두움은 무지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영적 어두움은 순종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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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유일하게 피할 수 있는 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입니다. 내 자신을 주님께 맡기면 내 마음 속에 있는 끔찍한 죄악의 가능성을 경험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청결은 내 스스로 이루기에는 너무나 깊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면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나타나셨던 그 영이 내 생명의 중심부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 영은 더러움이 전혀 없는 청결한 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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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율법을 지킴으로 자신을 순결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례과 규칙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가르치신 진리들은 오직 주님이 우리 안에 새로운 성향을 넣어주실 때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구원의 가장 놀라운 경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전형질을 바꾸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성을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인성의 근원을 바꾸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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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의 주인 (7월 19일)

우리 주님께서 순종을 강요하신다면 그분은 노예 감독과 같아질 것이요 참된 권위를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순종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뵙게 되면 우리는 당장 주께 순종할 것이며 쉽게 주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실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밤까지 주님을 경외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은혜 가운데 자라나고 있는지 그 증거를 보고 싶으면 주님을 향한 나의 순종이 어떠한 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진흙탕에 빠져 있는 “순종”이란 단어를 살려내야 합니다. 순종은 동등한 관계에서만 가능합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서 참된 순종이 가능한 것이지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되면 참된 순종이란 그 의미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그분은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아들의 순종은 구속자로서의 순종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하여 순종하신 것이 아니라 “아들이기 때문에” 순종하셨습니다. 

via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영적 게으름뱅이

우리의 영성은 불의와 천대와 무례함과 불안정한 삶을 겪게 될 때 시험을 받게 됩니다. 이때 이러한 시험은 우리를 영적인 게으름에 빠지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조용하고 안일한 삶을 목표로 하여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안정과 기쁨을 얻길 원할 뿐이지 우리의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실현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그를 통하여 복을 즐기려 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이러한 안정이나 기쁨은 바른 신앙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인데 우리는 오히려 그것들을 신앙의 원인들로 삼으려고 애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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