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11의 게시물 표시
올해 한 지인을 통해 꽤나 괜찮을 것 같은 한 회사의 입사 권유를 받게 되었다. 내가 과연 자격이 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래도 한 번 도전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마지막 인터뷰를 앞두고 가지 않기로 하였는데 여전히 그 때의 결정이 좋은 결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즈음에 고민하던 한 가지는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은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내 생각에 좋은 직장은 일이 많지 않아 정시 퇴근이 가능하고, 급여가 많고 복지도 좋은 회사이다. 그렇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아직 내가 원하는 직장에 대한 그림이 없는 것을 알았다. 뚜렷한 그림 없이 좋은 조건때문에 선택하는 직장은 현실 도피이다. 이번의 경우처럼 비전이 뚜렷한 회사에 분명하지 않은 목적으로 입사할 수는 없었다.

또 하나의 망설임의 이유는 좋은 기회가 모두 좋은 기회는 아니었던 경험적인 요소가 작용을 했다. 주님의 지켜 보시는 눈은 언제나 나를 향해 계시고, 나의 성장을 원하신다. 나를 지켜 보시는 주님 앞에서 갑자기 선물처럼 다가온 제안에 대하여 반응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 때 내 마음 속 작은 생각으로 인해 보게 된 것은 바로 내 욕심이었다.

되면 좋고 안되도 별 문제 없으니 도전이나 해볼까 하는 그런 생각으로 시작된 일은 이렇게 흐지부지 끝나 버렸다. 결론적으로 나는 여전히 많은 일에 잠 못 이루며 예전에 하던 그 일을 계속 하고 있으며 비전에 대한 고민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서야 이렇게 구구절절 두서없이 장문의 글을 쓰는 이유는 내게 제안을 해 준 고마운 친구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혹시 마음이 상해 있을까 생각해서 이고, 이 일을 정리해야 하겠다는 마음의 부담이 느껴져서이고, 여전히 미안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성장하고 있는가?
골로새서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이유없이 당하는 고난이 있다. 사도바울의 이 신앙 고백은 나를 초월해서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가르쳐 준다. 그리스도의 육체의 고난으로 이루신 십자가의 중보는 그 누구도 미처 알지 못할 때 이루어졌다.

이 말씀이 계속해서 떠오르던 시간을 보내며… 주께서 주시는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받기 원하는 것은 모든 일의 영적 인과관계를 믿기 때문이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눅 1:45)

주의 말씀은 상황에 어울리게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주의 말씀은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나의 삶에 함께 동행하시는 주님을 경험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있는가?
이스라엘의 예후는 아합왕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칼이 되었다. 또한 그는 바알 숭배를 척결하는 일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가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죄를 대항하여 싸울 때에 끝까지 남겨 두고 보상처럼 즐기는 죄가 있다면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열왕기하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