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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시나니”

다윗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그 시간 이후로 그 말씀을 확신하며 레위인이 주를 섬기는 방식에도 전환이 필요한 것을 알았다.

레위인이 이전에 하던 일이 이동식 성막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었지만 주께서 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시겠다고 말씀 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해서 레위인에게 주어진 새로운 예배파트는 찬송하며 감사하는 일이었다.

다윗은 성전건축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 모든 일들을 확정하였다. 그리고 솔로몬의 성전은 다윗이 준비한 이 물자와 사람과 예배자를 수용하기 위한 양식과 규모로 만들어졌다.

건물의 지어진 양식을 따라 예배하고 있는가? 주 앞에 찬송하고 예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물을 지어가고 있는가?

성전 건물을 삶에 대비할 때, 삶이 주님을 예배하는 목적으로 완성되어 가야한다. 주를 위하여 준비된 이후에야 삶이 주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완성될 수 있다.
1 Chronicles 23:2

And he gathered together all the princes of Israel, with the priests and the Levites.

다윗은 성전건축 준비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예배를 섬길 사람을 모은다. 하나님은 사람의 예배를 받으신다. 성전의 웅장함이나 아름다움이 주를 더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윗에게 허락되지 않은 성전 건축에는 이처럼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이었다. 주께서 어떤 일을 허락하지 않으실 때 하나님은 그전에 준비될 무엇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오늘 주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 어떤 일들 앞에서 준비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다윗은 성전건축을 준비하며 엄청난 물량을 준비하였다. 오늘 말씀에서 다윗이 모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다윗이 믿음으로 기대한 성전 건축은 그만큼 그가 준비한 물자와 사람들에서 알 수 있다.

기대한 만큼 준비한다. 하나님은 준비한대로 사용하신다.
퇴근 길에 구글플러스에서 공유하는 방법이 생각나서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았는데 아무래도 뭔가 미흡하다.

써드파티에서 받아주지 않는 무엇이 있다.

자야 되는데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역대상 22:7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주의 일을 하려는 좋은 마음을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일을 실제로 할 수 있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하나님은 일의 결과를 다음 세대에 보여 주신다. 주의 일을 하는 것은 다음 세대를 믿음으로 보는 것이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원하였지만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다윗은 성전 건축하기를 바랐지만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마음에 드는 시기와 사역을 기다리다 보면 끝내 아무 일도 이룰 수 없다. 주께서는 내가 기다리는 그 일을 영영 허락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 주께서 오늘 부르시는 그 일을 해야 한다. 때를 기다리다가 놓쳐버리는 것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다윗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막혔을 때 그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일을 자청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정작 하고 싶은 일은 허락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일이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주께서 가르치시는 것이다. 내가 정말로 하기 원하는 그 일이 주께서 보시기에 가치없는 일일 수도 있다.

주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이 선한 것임을 믿으며 따르고 있는가? 다윗처럼 오늘 할 수 있는 그 일을 시작하고 있는가?

빨간 신호등

역대상 22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를.회개하였고, 하나님은 다윗의 회개에 불로 응답하신다. 이후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신 성전 건축 계획을 진행한다.

이 성전 건축 계획은 다윗이 주변 나라들에 영향력을 키워가는 동안에는 잊혀진 계획이었다.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주의 은혜이다. 이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가? 영향력을 키우는 일에 더욱 집중하는가?

다윗에게 찾아온 어두움의 시기는 짧은 것이었지만 강렬했고 다시 주께로 돌이키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삶에 나타나실때 하나님을 기억하게 된다. 하나님이 어떤 순간에 임하시는지가 중요하다. 죄의 순간인가? 예배의 순간인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나면 다시금 주께서 기뻐하시는 그 일에 집중하게 된다. 주의 자녀에게 빨간 신호등은 잃어버린 방향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오늘 나의 삶에서 주께서 기뻐하실 그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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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작마당에서

역대상 21:26 KRV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다윗의 회개에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셨다.

주의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받은 이후 다윗이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것만으로 보자면 다윗은 그 사건 이후 처음으로 (갓을 통하여) 주의 말씀을 듣는다.

죄의 자리에서 주의 음성을 듣는가? 기쁨의 자리에서 주의 음성을 듣는가?

다윗은 불의 응답을 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두려움에 빠져 있었으며 주 앞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주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은 주님의 용서를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 주님께 용서 받았는가? 그것을 믿고 주님께 나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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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탈진하였을 때 사람들로부터 따스한 우유를 기대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의탁하라. 피곤이나 신경질은 목표를 잃기 때문에 발생한다. 현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봉사라고 불리는 행사 때문에 믿음의 목표를 잃고 영적 질병에 걸려들고 있다. 그들은 힘의 근원되시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대신에 봉사로 자신들의 연약함을 포장하려고 하고 있다.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방법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옵션은 세가지였다. 3년간의 기근, 3개월간의 쫒김, 3일간의 전염병.

다윗은 기간이 짧았던 세번째 징계를 선택하였고 참혹한 전염병으로 7만명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

기근도, 적에게 쫓기는 것도, 전염병도 주께서 다스리시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연히 생기는 일은 없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회개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영향이 그의 백성들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기도했을 때 전염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었다.

하나님이 다윗의 일생에서 행하신 일들을 잊고 자신의 힘으로 잘해 보려고 했을때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그 어느때보다 큰 것이었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잘해보고 싶을 때

역대상 21:1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주의 뜻을 구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다 보면 주께서 이미 주신 은혜로 잘 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다윗이 어느 순간 이스라엘의 인구를 파악하고 싶은 충동이 있었을 때 그 충동은 사탄이 일으킨 것으로 이겨내기 어려운 것이다. 그 충동이 다윗 자신의 욕심에 기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탄은 사람의 욕심을 충동질한다.

끊임없이 주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고 있는가? 이제는 주께서 그간에 주신 것을 가지고 어떻게든 해볼수 있을것 같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벗어 나려는 다윗의 생각은 다윗 주변의 인물들에게는 무모한 행동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오직 다윗만이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삶에는 끊임없이 주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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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the crown of their king

해가 바뀌어도 암몬 족속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었다. 원수는 끈질기게 삶을 힘겹게 한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다시 집결한다. 그리고 암몬을 완전히 정복한 후 왕이 쓰고 있던 왕관을 벗겨 다윗이 차지한다.

원수와의 싸움은 최후 승리의 시간까지 싸우는 것이다. 원수의 권세를 완전히 무력화 하여야 한다.

선하게 여기시는 대로

역대상 19:13 KRV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암몬은 자신들이 두려워한 그 일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었다. 전쟁에서도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달아나고 말았다.

강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전쟁을 치룰때 하나님은 주님의 일을 하신다. 요압이 말한 분명한 진리는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대로!”

전쟁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선하게 보시는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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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근처의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it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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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도가 오해받을때

1 Chronicles 19:2

“I’d like to show some kindness to Hanun son of Nahash—treat him as well and as kindly as his father treated me.”

고대의 몇몇 부족은 현대의 물질만능주의와 성적 타락, 우상숭배를 상징한다. 암몬족속이 바로 그런 부족 가운데 하나였다.

다윗은 암몬의 왕이 죽었을 때 자신이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하여 조문사절단을 보낸다.

그러나 다윗의 친절은 그들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첩자로 매도한 것이다. 다윗의 사절단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을 때 다윗은 암몬을 향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단지 그는 신하들이 더이상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조치 하였을 뿐이다.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이 오해 받았을 때 일어나는 감정을 주께 맡겨라. 하나님은 그 일에 직접 반응하신다.

다윗은 아무일도 하지 않았지만 암몬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전쟁을 준비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염려한 일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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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가운데 일어나는 전쟁은 힘겨운 것이다. 그러나 승리가 보장된 전쟁은 어떤가? 다윗이 주 앞에서 경험하는 삶이 이런 것이었다.

다윗이 주 앞에 감히 기도할 생각을 품고 주 앞에 앉았던 그 시간 이후 다윗은 승리가 보장된 전쟁을 치르며 그의 영향력은 주변 나라에까지 넓어졌다.

오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전쟁은 주의 축복인가? 고난인가?
“이 기도로 간구할 마음”

전혀 예상할 수 없고 차마 하나님께 기도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기도의 영역이 있다.

다윗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에야 그러한 기도의 영역이 자신에게 열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주께서 허락하신 영역에 대하여 주께 기도하게 되었다.

내 마음으로 미처 알 수도 없고, 차마 기도할 수도 없는 영역에 대하여 …

주여! 허락하소서
하나님의 아들

역대상 17:12-14

저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나의 자비를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기를 내가 네 전에 있던 자에게서 빼앗음과 같이 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영영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의 결정은 다윗에게 알려졌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다. 하나님께서 그 결정을 사람에게 알리신 경우 가운데 이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이다. 다윗의 좋은 집에 살 때에 그는 주 앞에 죄송한 마음을 품었다. 일이 잘되고 있을 때 주를 생각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다윗의 이 마음을 아신 하나님은 성전건축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리신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주어진 주의 말씀을 듣고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계획을 맡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계획을 말씀하고 계신다. 주를 향한 마음을 하나님은 받으신다. 그리고 비밀을 알려 주신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 근심이 평안이 된다.
1 Chronicles 16:41 - “for his love endures forever.”

그의 사랑이 영원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다. 다윗의 일생처럼 어려운 길을 지날 때에도, 외로운 길을 지날 때에도, 죄의 길을 지날 때에도… 그 사랑은 변함이 없으시다.

주는 포기하지 않으며 실패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으로 나와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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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을 꾸짖어” - 역대상 16장

주께서는 사람의 신분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그가 가진 권력이나 부에도 관심이 없으시다. 하나님의 관심은 그의 자녀를 향해 계신다.

하나님은 인간 관계속에서 자녀의 편에 서시며 그가 관계속에서 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신다. 그가 비록 왕일지라도 하나님은 꾸짖으신다.

자녀가 비록 잘못해도 다른 사람에게 곤경을 당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은 주의 자녀가 사람의 권세에 떠밀려 가는 것을 두고 보시는 분이 아니시다.

오늘 보호자되시는 주님을 경험하고 있는가?
역대상 16:2-3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또 이스라엘 무리의 무론 남녀하고 매 명에 떡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병 하나씩 나누어 주었더라

다윗이 백성을 축복할 때에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먹을 것을 주었다. 축복은 행함으로써 구체화 되어진다.

야고보서 2: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주께서 주신 축복을 실제적으로 흘려 보내야 한다.

다윗은 이 일 이후에 찬양대를 조직한다. 이 조직은 모세의 율법에 명령하신 일이 없으신 자발적 조직이다. 찬양은 자발적으로 내면에서 일어난다. 더 주님을 높이려는 마음이 이러한 창조적인 액션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오늘 더욱 주를 높이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가? 그러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액션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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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15:29

“창으로 내어다보다가”

예배는 참여하는 것이고 온 몸과 마음으로 주께 드리는 것이다. 예배를 구경할 때 오는 합리성은 삶을 망가뜨린다.

다윗은 주의 은혜가 간절하여 두번 씩이나 언약궤를 옮기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의 가정이 모두 같은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미갈이 몰랐던 한 가지는 다윗이 주께 받은 은혜가 그들에게도 흘러 간다는 것이다. 내가 받고 내게서 흘러가는 어떤 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나의 권속들이 이해하며 주 앞에 한 마음이 되고 있는가?

나는 나의 가족과 함께 주를 예배하는 자리에 서 있는가? 가족이 한 마음이 되지 못할 때 가장 강력한 비판자가 된다.
역대상 15:13 KRV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예배는 주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드려져야한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예배를 가지고 나아와 주님께 수용을 강요할 수 없다. 다윗은 처음의 실패 이후에 주께서 전에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연구하였다. 그리고 모세의 규례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할 때도 주의 뜻을 잘 분별해야 한다.

첫번째 언약궤 옮기는 일에 실패한 이후에도 다시금 옳은 방식으로 다시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주께 간절히 매달리는 영혼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 없이도 잘 해볼 수 있다고 여겼다면 두번째 시도는 없었을 것이다.

모든 일의 시작은 주를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역대상 15:3
여호와의 궤를 그 예비한 곳으로 메어 올리고자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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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14:15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서 싸우라 하나님이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을 기다려라. 일의 진행을 주께 맡겨라. 뽕나무 꼭대기에서 들려오는 걸음소리는 주께서 일을 시작하신 것을 의미한다. 이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군사의 병기 부딫히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다윗은 직전의 전투에서 주의 뜻을 물음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한 다음에는 주의 뜻대로 행하고 있음을 확신하여 늘 해오던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기 쉽다. 그러나 두번째 전투에서 다윗은 다시 한번 주의 뜻을 묻는다. 바로 이러한 태도로 인해 다윗은 승리할 수 있었다.

삶은 끊임없는 위기의 연속이다. 주를 의지하는 것을 놓아 버리는 순간이 위기가 찾아오는 순간이다.

오후 4:30 예약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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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에버랜드. 월미도 놀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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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동 냉면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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