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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31일 목요일

네 소원대로 되리라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이 귀신들렸다.



나는 이 사건을 묵상하면서 마음이 많이 어려워졌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자신의 어려움을 주 앞에 내어 놓을 때 왜 이렇게 애간장을 태우시는가? 왜 밑바닥까지 낮아질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응답을 주시는가?



예수님은 분명히 사랑의 목자이신데 왜 이 사건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두로와 시돈 지방은 원래 이방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이다.



굳이 그곳에 가셔서 유대인들만 상대 하시겠다니 그렇다면 왜 그곳에 가신건가? 예수님은 인종차별을 하시는 분인가?



말도 안되지만 설명하기도 힘든 일이 그때 그곳에서 일어났다.



이 사건을 여인과 예수님의 관계에서 생각했을 때는 모순 투성이의 사건이었다.



묵상을 하면서 나는 이 여인의 기도와 응답을 받는 과정이 내 신앙생활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도 역시 이 여인처럼 좀처럼 기도응답을 경험하기 힘들다.



한없이 작고 연약한 나 자신과 내 안에 숨겨진 추악한 모습을 고백할 때에야 주님은 감동을 주시고 기도에 응답하신다.



이 사건에서 처음의 거절과 그 이후의 기도 응답의 원인은 모두 처음부터 이 여인에게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의 때와 방식을 감히 예상할 수 없지만 주님은 주님의 때가 될때까지 침묵하신다.



그리고 그 때를 결정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주님 앞에서의 나의 태도와 삶이다.




- 마태복음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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