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의 게시물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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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창밖 광화문. – View on Path.

단상

1. 나이를 먹을수록 구원은 멀고, 여전히 문제의 원인은 내게 있다. 시간이 흐르고 주님과의 교제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많이 다스려지고 더 많이 깨어져야 할 것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내 안의 그 문제들이 해결되기 전까지 주님이 유산으로 남겨주신 약속들을 청구할 수 없다는 자책감이 때때로 찾아온다. 

주님은 탕자의 비유를 통해 아버지의 것이 다 아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작은 아들과 같이 내 소유의 작음을 보고, 아버지의 한없이 위대함을 보며 주님 앞에서 탄식하는 연약한 사람 편에 서 있다. 

20년, 주님을 믿고 따른 세월이 적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주님 앞에서 탕자가 되고 잃어버린 아들이 된다. 그리고 내 마음 한 켠에 주님이 날 고쳐가시는 이 교정의 과정을 통과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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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다 – View on 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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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mb up … – View on 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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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가을 하늘… (지난 주일 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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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기약하며 퇴근… 이 시간까지도 붐비는 종로… – View on 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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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생활 패턴. 어제도 밤을 꼬박 새고 이제야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있다.

내 삶의 가치와 우선 순위가 어디에 있는가? 지키기 위해서 버려야 할 순간에 결단하고 있는가?
꼭 닫아놓은 창문 틈 사이로 바람이 솔솔 새어 들어온다.
어느새 찬 바람이 살갗을 아프게 스치는 계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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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다음… 깨끗한 밤이다.
- 삼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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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가을이 익었네.

- 근무중인 건물 옥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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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다가 앉아서 가는 편이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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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하여

-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열왕기상 17:9)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명령 하시기전에 하나님은 먼저 한 여인을 준비 시키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막상 엘리야가 그곳에 갔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신 그 사람이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곳의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를 영접해 오지 않았다.
이것이 주의 말씀을 대하는 가장 흔한 태도이다. 주님의 부르심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고 나를 비켜가기를 바란다. 그 여인은 주님의 명령을 분명히 들었다. 그러나 그 부르심에 따를 수 없었다. 주님의 부르심에 따르지 못할 이유는 너무나 많이 있다. 
엘리야는 가난한 그 사람이 차라리 죽어버릴지언정 그를 공급할 수 없는 그 가난한 자손심에 상처받고 싶어하지 않은 마음을 알았다. 그 때 엘리야는 강제로 그를 동원하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아주 조금만 마음을 보이라고 권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끼 식사를 겨우 준비할 수 있을만큼 남아있는 그의 양식 가운데 아주 조금만 덜어내어 엘리야를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그 다음에 자신과 가족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라고 말한다.
-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 14)
만약 엘리야가 배불리 먹고자 했다면 그 가족에게 남아있는 양식 전부를 다 털어넣어도 엘리야에게 부족했을 것이다. 엘리야는 그를 거덜낼 마음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였지만, 그의 신뢰를 근거로 가난한 여인을 압박하여 강제로 식사를 준비하도록 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마음에서 아주 작은 포기의 마음이 일어나기를 바란 것이다.
하나님은 인정사정없이 사람을 몰아쳐 강제로 가진 것을 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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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서기>
를 익혀야 한다.
홀로서기 - 서정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시편 119:71

계속되는 불면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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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21 Mr.サンデー SP生存高校生が始めて語る”奇跡の生還” ~韓国セウォル号沈没の真実~

일본방송 Mr.선데이 - 세월호 침몰의 진실
한국어 자막을 옵션에서 켤 수 있습니다.

이런 방송을 해주니 고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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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지하철1호선 – View on Path.
Matthew 11:28-30 MSG

“Are you tired? Worn out? Burned out on religion? Come to me. Get away with me and you’ll recover your life. I’ll show you how to take a real rest. Walk with me and work with me—watch how I do it. Learn the unforced rhythms of grace. I won’t lay anything heavy or ill-fitting on you. Keep company with me and you’ll learn to live freely and lightly.”
문득 이 말씀이 지친 삶에 다가왔다. 주님만이 진정한 쉼을 주신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빌립보서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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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고맙게 잘 사용하던 서울버스앱이 다음에 인수되는 모양이다. 그동안 몇 차례나 네이버에 인수된, 인수되기 전에 꽤 쓸만했던 어플리케이션이 인수된 이후 조용히 사라져 버린 것이 기억이 난다.

잘 된 일이기를 바라고, 더 발전된 앱이 되기를 바란다.

(펌) 법치주의는 죽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 김동진



판사와 검사의 책무는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다. 선거에 의하여 다수의 지지를 얻은 정권은 때때로 힘에 의한 ‘패도정치(覇道政治)’를 추구한다. 소수의 권력자들이 국가의 핵심기능을 좌지우지하고,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권력자들의 마음 내키는 대로 통치를 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아무리 다수결의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정신의 한 축인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유린하는 것이다.

헌법이 판사와 검사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면서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에 임하라”고 하는 준엄한 책무를 양 어깨에 지운 것은, 판사와 검사는 정치권력과 결탁하지 아니한 채 묵묵히 ‘정의실현(正義實現)’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전제돼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판사와 검사에게 ‘신뢰(信賴)’를 부여한다면, 우리들은 그것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우리들의 심연(深淵)에 있는 출세욕, 재물욕, 공명심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사심(私心)을 떨쳐 버려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나는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죽어가는 상황을 보고 있다.

2013년 9월부터 올해의 이 순간까지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현 정권은 ‘법치정치’가 아니라 ‘패도정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런 과정에서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고군분투(孤軍奮鬪)한 소수의 양심적인 검사들을 모두 제거하였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관하여 의연하게 꿋꿋한 수사를 진행하였던 전임 검찰총장은 사생활의 스캔들이 꼬투리가 되어 정권에 의하여 축출되었다. 2013년 9월부터 10월까지 검사들을 비롯한 모든 법조인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밝히려고 했던 검사들은 모두 쫓겨났고, 오히려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덮으려는 입장의 공안부 소속 검사들이 국정원 댓글사건의 수사를 지휘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며, 대한민국의 역사와 관련된 중요한 재판이 한 편의 ‘쇼(show)’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각종 언론은 이런 상황을 옹호하면서 나팔수 역할을 하였다. 내가 바라본 …

죄인과 가난한 자들의 나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



가난한 사람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죄인의 나라, 가난한 자들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신다. 교회가 죄인의 마음과 가난한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거기는 바리새인의 교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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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빌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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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센트럴파크, 하늘이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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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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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전철이 늦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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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유난히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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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만 모르는 국산 과자의 비밀. #불만제로
어떤 사람이 한달여나 대문앞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간청하면 우선 사람은 살려야 하지 않느냐고 나가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인지상정.

이쯤되면 사건의 책임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사람이 기력잃고 쓰러져 가는 데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 관련, 유가족 호소문

여야 재합의를 거부하며 대통령과 국회에 호소합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가족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실종자 10명은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 하고 있고,
유민이 아빠는 사십일 가까이 죽음의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데
우리 가족들 보고 정치의 한가운데에서 흥정을 하라고 강요합니다.

우리는 지치고 고통스러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약 130일을 버텨왔습니다.
우리 아이들, 우리 가족들은 왜 죽을 수밖에 없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야 했습니다.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앞으로 한 명의 소중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청와대 국회 광화문 등지에서 성역없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외쳤고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곳곳을 돌며 400만의 서명을 모아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을 입법 청원하였습니다.

5월 16일 청와대에서 우리 가족들을 만나 특별법 제정과 관련하여 “국회에서 애끓는 유족 여러분들의 마음이 잘 반영이 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했고, 5월 19일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다 고 눈물로써 했던 대통령의 약속을 우리는 믿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정조 사에서 요청된 자료의 5% 미만 만을 공개하고, 청와대가 재난컨트롤타워는 아니라는 말 만을 반복하고, 대통령을 만나고자 하는 가족들의 절규에 답하지 않고 청와대 2000미터 밖에서 가족들을 가로막음으로써 답했습니다.

4월 29일 본회의 결의를 통해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통해 사고의 원인 과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내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또한 정부는 이번 사고 와 관련된 불법 행위이자 전원과 직무를 태만히 한 공직자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처벌할 것을 촉구"하였던 국회의 약속을 우리는 믿었습니다. 그러나 참사 초기 그 어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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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 Tomlin - Lord I Need You
저는 가난한 이들이 복음의 핵심에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그 자리에 있습니다. 나자렛의 회당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직무를 처음 시작하는 자리에서 이 점을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이 장차 올 하늘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심판을 받을지 드러내 밝히실 때, 여기에서도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봅니다. 번영의 시대에 떠오르는 한 가지 위험,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그저 또 다른 “사회의 일부”가 되는 위험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신비적 차원을 잃고, 성체성사를 기념하는 능력을 잃으며, 그 대신에 하나의 영적 단체가 되는 위험입니다. 이 단체는 그리스도교 단체이며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을 가진 단체이지만 예언의 누룩이 빠진 단체입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가난한 이들은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적절한 역할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이 유혹에 특정 교회들과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크게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어떤 사례들에서 이런 교회와 공동체들은 그 자체가 중산층이 되어서 그런 공동체의 일부가 되는 가난한 이들이 심지어 수치감을 느낄 정도가 됩니다. 이것은 영적 “번영”, 사목적 번영의 유혹입니다. 그런 교회는 더 이상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부유한 이들을 위한 교회, 또는 돈 많고 잘나가는 이들을 위한 중산층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는 낯선 일도 아닙니다. 이 유혹은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코린토 신자들을 질책해야만 했습니다.(1코린 11,17) 그리고 야고보 사도는 이 문제를 더욱 강하고 명확하게 제기했습니다. (야고 2,1-7) 그는 이들 부요한 공동체들, 부요한 사람들을 위한 부요한 교회들을 질책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들이 누리는 생활양식 때문에 가난한 이들이 그들 공동체에 들어가기를 꺼리게끔 하였고 가난한 이들은 그런 …
하루 16시간이나 일에 몰두할 때는 아무 문제 없이 모두 제대로인 듯했다. 하지만 잠시라도 일 없이 긴장을 풀고 있다 보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뚜렷한 해결책은 없는데,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어 괴로웠다. 마침내 모든 것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다. 우선 당회에 알렸다. “두 주 정도 기도하러 어딜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리고는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다. 성령께서 나를 깨뜨리시기 시작했다. 그분의 첫 말씀은 이것이었다. “너는 유명 음료 회사가 음료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름난 잡지사가 책을 파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술수만 쓰고 있을 뿐, 네가 하는 일에는 나의 손길이 전혀 드러나질 않는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제자입니까

1995년쯤, 이 책을 처음 접하고 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벌써 20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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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여호수아 5:10-12)

주의 인도하심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은 마침내 약속의 땅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에 그들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가진 것은 광야생활동안 하나님이 주신 선물같은 닳지 않는 신발과 헤어지지 않는 옷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광야의 거지떼가 그들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만나의 공급을 중단하신다. 
우리 삶에 주시는 하나님의 사인(Sign)은 고난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때를 지나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곳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인을 주신다. 
그리고 주님이 인도하신 약속의 땅은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https://clyp.it/ilq2y0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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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의 제목은 ‘주님의 은혜 넘치네’ 이다.
영어 제목은 'Your grace is enough’

사도 바울이 자신의 육체의 고통을 치유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했을 때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My grace is enough for you)'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노래의 가사 가운데 'Enough'가 '넘치네'로 번역이 된 것에 시선이 끌렸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니까.

아마도 치열하게 축복을 갈구하도록 훈련받아온 한국 교인의 성향에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이 표현이 '충분'하지 않게 여겨졌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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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에서 발행한 일천억달러 지폐이다. 이것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계란 세 알.

우리가 이 땅에서 그토록 많이 가지려고 애쓰는 돈이나 명예 같은 것. 진정한 행복과 얼마나 관계가 있는 것일까?

어쩌면 웃음, 가정, 즐거움 … 이런 것들에 비해 우리 삶에서 돈의 의미가 너무 인플레이션 되어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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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도 케어해야 할텐데…

어제 저녁, 잠들기 전에 양치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