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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부활절 찬양축제를 할 때에 만들어 부른 노래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시23:4
딸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온 가족이 함께 해서 (비록 둘째는 잠이 들어 버렸지만) 의미가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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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의 4.16 세월호 추모행사때 촬영된 사진이다. 이토록 많은 경찰 인력이 시민들의 추모행사를 가로막기 위하여 출동했다. 단지 그 일을 하기 위하여 모인 것이다. 대체로 치안 인력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경찰은 그 숫자를 많이 줄여도 좋을 것 같다.
대통령은 나라를 비웠고, 국무총리는 뇌물수수한 정황이 포착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치안을 담당해야 할 경찰은 이러고 있다. 그러니 좀도둑들에게는 요즘이 대목일 것 같다. 
사진의 출처는 워터마크가 박혀있는대로 연합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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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사건의 발생에서 대처까지 모든 과정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해보고자 길에서, 온라인에서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이들에게 한없이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진채로 침묵의 동의를 보내고 있다. 나는 그들이 만들어가려는 아름다운 세상에 무임승차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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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주님의 피가 흐르는 주님의 몸이지만 요즈음 교회의 실상은 주님의 공의는 간데없고 회사를 경영하듯 교회를 경영하는 장사꾼들이 판을 치는 곳이다. 이런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찾을 수 있을까?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어떤 일에도 부끄럽지 않기를 원했다. 삶에 부끄러운 돈, 부끄러운 권력, 부끄러운 행동이 없도록 힘써야 한다. 바울은 이것을 간절히 원하였다. 어떤 일에도 부끄러움이 없을 때 우리는 담대히 말할 수 있다. 아마도 바울은 그 다음의 문장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을 위하여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를 힘썼던 것 같다. 삶에 부끄러움이 없을 때 말이 진실되고, 그 말이 살아있는 메시지로 구원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다. 
“지금도 전과 같이” - 이 문장에서 바울에게 있었던 마음의 유혹과 그의 결심을 보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며 현실에 타협하고 싶을 때쯤, 그래도 그의 삶에서 버릴 수 없었던 것. 늙어도 부끄러움이 없이 삶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말한다. “지금도 전과 같이 …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노라"오늘 내 삶에서 부끄러움을 없이하며 살아가고 있나? 그리스도를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나?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립보서 1장 20절,2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