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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29일 수요일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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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을 이용해서 서울랜드에 다녀왔다. 사람은 적당히 붐볐고 날씨는 최고의 가을 날씨였다. 뜻하지 않게 하루를 더 쉬게 되었고 덕분에 아이들과 하루를 더 놀아줄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



2010년 9월 28일 화요일

하늘공원


지난 주말에 들렀던 하늘공원. 불타는 저녁놀이 너무 예뻤다.
Posted by Picasa

2010년 9월 27일 월요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번역한 스데반 황 목사님이 오스왈드 챔버스 블로그를 개설하고 이 곳에 책 전문을 원문과 함께 올려 놓았다. 요즘 주님의 나의 최고봉을 읽으며 하는 짧은 묵상시간을 무척이나 즐기고 있는데 정말 감사한 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책으로 읽는 것을 추천한다. http://oswald-chambers.blogspot.com/

2010년 9월 25일 토요일

2010년 9월 23일 목요일

830(10/09/24) 찬양선곡

생명 주께 있네

나 기뻐하리

보혈을 지나

믿음이 이기네

이 땅에 오직

2010년 9월 16일 목요일

We will sing, sing, sing
And make music with the heavens
We will sing, sing, sing
Grateful that You hear us
When we shout your praise
Lift high the name of Jesus

What’s not to love about You?
Heaven and earth adore You
Kings and kingdoms bow down
Son of God, You are the One
You are the One we’re living for

You are the love that frees us
You are the light that leads us
Like a fire burning
Son of God, You are the one
You are the one we’re living for

이메일

대부분의 국내 메일 서비스가 자신에게 메일쓰기라는 옵션을 지원한다. 그것도 메일서비스의 초기화면에 링크가 걸려있다. 소통의 도구인 메일이 기록저장소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재미있다.


용도에 의해 도구를 개발하지만 도구를 이용하면서 새로운 용도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문명은 발전해간다. 


p.s 새롭게 이용하게 된 텀블러를 이용해 몇 글자 적으면서 느끼는 텀블러가 가진 가장 큰 단점은 느리다는 것 …

2010년 9월 15일 수요일

넘치는 교회. 정말 힘이 넘친다 ㅎㅎ

텀블러

블로거닷컴보다 텀블러가 페이스북과의 호환성이 더 좋은 것 같다. 한동안 사용하다가 접어 버렸던 텀블러를 다시 사용해 보기로 하였다. 아무래도 페이스북은 타임라인이 넘어가면 잊혀지는 주절거림을 담는 그릇인데 비해 블로그에 남기는 것들은 기록이 된다. 간단한 생각이나 기록을 남기기에 텀블러가 아주 적당한 도구인 듯 보인다. 


(1절)

모든 만물 경배해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신실하신 주께 영광 예수 그리스도


(2절)

나의 생명 드리리 주님의 길 가르치소서

성령의 불 우리 안에 모든 땅끝이


(후렴)

위대한 하나님 온 민족 찬양하네

그 소리 땅과 하늘 가득하게

위대한 하나님 온 민족 찬양하네

난 오직 주만 위해 살리라

주 영광 위하여

모든 만물 찬양해 홀로 위대하신 왕

주만 다스리시네 영원 영원히

주 보도록


(Bridge)

거룩하신 주 모든 민족 주 찬양해

2010년 9월 14일 화요일

  1.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경배합니다 아버지 채워주소서 당신의 사랑으로

  2.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경배합니다 예수님 채워주소서 당신의 사랑으로

  3. 성령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경배합니다 성령님 채워주소서 당신의 사랑으로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


하늘의 아버지 날 주관하소서


주의 길로 인도하사 자유케 하소서


새 일을 행하사 부흥케 하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성령의 기름 부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내 잔을 채워주소서



성령으로 채우사 주 보게 하소서


주의 임재 속에 은혜 알게 하소서


주 뜻대로 살아가리 세상 끝날까지


나를 비추시고 새 날 열어주소서



오직 주님만 나의 맘에 갈급함 채우네


오직 주께만 더 가까이 가기를 원하네



주님만 내 갈급함 채우네 주만 내게 새 생명 주네


주만 기쁨 내 맘에 주시네 나의 기도 응답 하시네



주 신실하심 놀라워 죄인의 마음 흔드네


자비의 물가로 인도하시니 그 무엇도 끊지 못해


주여 기억하소서 주 백성 자녀들




신실한 주님의 약속



주님의 은혜 내게 넘치네 나를 향한 주 은혜




주님의 은혜 내게 넘치네 나를 향한 주 은혜



공의와 사랑 놀라워 약한 자 들어 쓰시네


구원의 노래로 인도하시니 만 백성 함께 찬양해


주여 기억하소서 주 백성 자녀들




신실한 주님의 약속



사랑스러운 주님 땅과 하늘 찬양해


열방이 경배해 예수님 당신은 주


유일하신 삶의 이유



자유케하는 사랑 타오르는 불처럼


인도하시는 빛 예수님 당신은 주


유일하신 삶의 이유



 


Sing Sing Sing 천국에 울리는 노래




We will sing sing sing 주님 들으시네



감사드리며 예수 이름 높이세

830(10/09/17) 찬양선곡

오직 주님만

믿음이 이기네 (미정)

마음이 상한 자를

아버지 사랑합니다

2010년 9월 12일 일요일

위대한 하나님








(1절)
모든 만물 경배해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신실하신 주께 영광 예수 그리스도


(2절)
나의 생명 드리리 주님의 길 가르치소서
성령의 불 우리 안에 모든 땅끝이


(후렴)
위대한 하나님 온 민족 찬양하네
그 소리 땅과 하늘 가득하게
위대한 하나님 온 민족 찬양하네
난 오직 주만 위해 살리라
주 영광 위하여
모든 만물 찬양해 홀로 위대하신 왕
주만 다스리시네 영원 영원히
주 보도록


(Bridge)
거룩하신 주 모든 민족 주 찬양해




영상의 가사와 텍스트가 약간 다른데 copycare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네요. 오직 성령과 진리 안에서오직 성령과 진정으로 라고 수정한다는 내용입니다.

http://kr.copycare.asia/Board/BBS/read.asp?DB=Notice&SC=&vNum=&No=321&Page=3&FCate=&FWord=


2010년 9월 9일 목요일

God is Great




Verse 1:
All creation cries to You worshipping in spirit and in truth
Glory to the Faithful One Jesus Christ, God? Son
All creation gives You praise You alone are truly great
You alone are God who reigns for eternity
Chorus:
God is great and His praise fills the earth fills the heavens
And Your name will be praised through all the world
God is great, sing His praise all the earth all the heavens
cause we’re living for the glory of Your name The glory of Your name
Verse 2:
All to You oh God we bring
Jesus teach us how to live
Let your fire burn in us
That all may hear and all may see
Bridge:
Holy is the Lord the whole earth sings the whole earth sings
Cause we’re living for the glory of Your name
The glory of Your name

기타프로 6

기타프로 6을 질렀다. 59.95 달러니까 한화로 약 7만원 가량 되는 금액이다. 노래를 몇 개 만들었는데 그 동안 채보할 때 기타프로를 사용했었다. 처음에는 해적판을 사용했었는데 이번에 정품을 구매했다. 제대로 된 사용법도 아직 잘 모르지만 그래도 정품을 구매하니 뿌듯한 마음이 든다. 프로그램 자체는 30메가 이내로 가벼운 것이지만 사운드 리소스까지 모두 합치면 1기가가 넘는다. 집에서는 인터넷 속도가 매우 느려서 밤새 다운로드를 걸어놓고 아침에 봤더니 설치가 다 되어 있었다.

마무리가 왠지 어색하고 악상이 떠오르지도 않아서 완성하지 못한 노래가 있었는데 지난 주일 목사님과 성경공부 중에 내가 만든 노래 가사와 동일한 가사를 흥얼거리시는 것을 듣고 아내와 눈이 마주쳐 웃었다. 그래서 이 노래를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주에 비어있던 마지막 구간에 채워 넣을 가사도 생각이 나서 주 중에 완성을 했다. 아마 교회에서 부르게 될 것이다.

2010년 9월 8일 수요일

주님이 찾으시는 예배

장엄하고 거룩한 형식의 전통예배라 할지라도, 첨단 멀티미디어와 완벽한 음향, 미디어 시스템을 갖춘 현대예배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었다면 헛것이다. 예배 후 그날 깨달은 말씀대로 살고 싶은 아무런 열망이 없다면 죽은 예배다. 기독교 최고 가치인 예수의 십자가 사랑에 감격한지 10분도 안돼서 식당에서 먼저 좋은 자리 잡으려고 다툰다면 영적 분열 증세이다. 하나님보다 찬양 팀의 화장, 옷맵시, 설교자의 억양, 머리 스타일, 성가대의 곡 스타일, 재미있는 광고만 더 머리에 남는다면 장례의식에 불과하다. 그날 회개한 죄 문제에 대해 결연한 의지로 돌아서겠다는 열망이 솟아나지 않는다면 가짜 예배이다. 예배 때 열정적으로 부른 찬양 가사와 6일간의 생활이 전혀 다르다면 하나님이 역겨워하시는 예배이다. 이런 예배는 결단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가 아니다. (http://dc.christianitydaily.com/view.htm?code=oc&id=185495) (이유정 칼럼)

아마 서점에서 마이클 카드가 쓴 책 일부분을 읽은 것 같다. 책을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마이클 카드의 고백이 기억에 남아서 오늘 검색을 했다. 그리고 이 글을 발견했다. 하나님은 중심을 원하신다. 이 주간에 책과 묵상 등 여러 부분을 통해 받고 있는 동일한 메시지이다. 이유정 목사님의 다른 칼럼을 읽었는데 마음에 느끼는 바가 많이 있다.

830 (10/09/10) 찬양선곡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생명 주께 있네

나의 안에 거하라

주만 바라볼지라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2010년 9월 7일 화요일

사역에 관한 소고

몇 번의 가을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모든 사역을 손에서 내려놓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과연 그 때까지 얼마나 많은 진보를 이룰 수 있을까? 아이가 자라는 것이 아비의 기쁨이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래 이 사역을 할 수 있을까? 더 높은 분량의 사역을 꿈꾸는 것이 꿈일까? 비전일까? 그도 아니면 욕심일까?

2010년 9월 6일 월요일

찬양

당신이 회중 앞에서 찬양할 때의 모습과 하나님 앞에서 개인 적으로 기도하고 찬양 드리는 모습은 일치 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보다 공중찬양시가 더 활기차고 풍성한 것으로 느껴지지는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바로 그 차이만큼 당신은 껍데기로 위장된 찬양을 해왔는지도 모릅니다. (강명식)

 

기도하지 않는 찬양사역자  - 강명식 (주찬양 선교단)

I. 시작하는 글

크리스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의 하나가 기도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찬양사역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어떨까요? 그래도 찬양 사역인데 찬양이 더 중요하겠지….!! 물론, 기도와 찬양의 개념들을 어떻게 정의 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상이한 의견들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가 더 중요한지, 아니면 찬양이 더 중요한지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령님의 빛 비추심을 받아서 함께 살펴 보고 나누려는 것은 ;

i) 크리스천으로서 동시에 찬양 사역자로서 기도를 얼마나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

ii) 왜 기도가 찬양사역에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iii) 중요하게 느끼는 만큼 얼마나 실제로 무릎을 꿇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우리의 뻣뻣한 무릎을 주님 앞에 꿇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당신은 찬양 사역자로서 얼마나 무릎을 꿇고 계십니까?

II. 찬양 사역 = 기도사역!

찬양 사역자들은 기도를 제일 많이 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찬양 사역자들에게 기도가 소홀해지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찬양과 기도가 아주 유사하면서도 다르게 보이고 동시에 비슷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실제적인 예를 들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몹시도 무더웠던 지난해 찬양 캠프의 마지막 날 전철민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찬양캠프라고 하니 이 더운 날씨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만약, 기도캠프를 한다고 광고를 하면 과연 몇 사람이나 모이겠습니까?”

목사님의 말씀에 공감을 하면서 ‘찬양'을 통한 사역이 찬양 사역이라면 '기도'를 가지고 하는 기도 사역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전혀 드러나지 않고 뒤에서 기도만 하는 '기도 사역자'를 위한 기도 캠프가 열린다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매력을 느끼고 열광적으로 참여하게 될는지도 궁금하였습니다.

사실, 기도한다는 것이 매우 쉽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아버지와의 꾸밈없는 대화'이지만 '노동'이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의 아주 짧고 간단한 고백도 분명 기도이지만, 우리의 평생을 두고 걸어 가야할 순례의 길이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바로 여기에 찬양 사역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즉, 믿음의 초기단계에서 홀로 기도할 수 없을 때, 또 기도하기조차 어렵도록 침체되어 있을 때 찬양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산소와도 같은 생명을 다시 호흡하도록 해 주는 것이 찬양 사역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찬양 사역의 능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한마디로 사역자 개인(그리고 팀의)의 기도만으로 가능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교통이 없이는 절대로 생명을 낳을 수 없음을 누누이 강조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단 생명을 얻은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이 내 안에서 매일 새롭고 풍성해 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주님과의 은밀한 교제, 즉 그분 앞에 조용히 엎드리는 것입니다.

더욱이, 대개의 찬양 사역은 -그 의미를 다소 한정시켜 생각할 때 -여러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일입니다. 즉,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수의 찬양 사역자가 찬양을 하거나 찬양 집회를 이끌어 가게 됩니다. 어떠한 형태의 사역에서나 기도가 필요하지만,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사역에서는 내밀하고 은밀한 기도가 더욱 요구됩니다. 각각의 사역이나 집회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과, 사역과, 사역으로 섬길 사람들을 위한 기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이러한 기도들은 많은 시간을 요하거나 때때로 고통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이 여러 기도의 사람들을 통하여 잘 알려져 있습니다.

III. 왜 기도하지 않게 되는가?

그런데 찬양 사역 전반의 주된 분위기는 일견 기도와는 거리가 먼 것 같이 보입니다. 겉으로 드러나고, 화려하고, 뛰는 것이지, 아무래도 골방에 숨을 죽여가며 오랜 시간 기도에 골몰해야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 앞서 잠시 언급한 찬양과 기도와의 유사성으로 인해서 기도를 소홀히 여기게 되기 쉽습니다. 즉, 좀 부족한 주님과의 교제는 실제 찬양을 하면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기재와 악기들을 겨우 준비해 놓고 준비 기도회를 못한 채 시작을 합니다. 주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각자 묵상기도를 하면서, 주님께 자기의 이름과 의를 위하여 역사하실 것을 구하며 찬양을 합니다. 물론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거듭되자, 악기를 셋팅하고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는데도 무엇을 할 지 몰라서 그냥 시간을 보냅니다.(이것은 우리 팀에 실제로 있었던 경험입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깊게 보면 매일 매일 자신을 쳐서 십자가에 굴복시키지 않으면 너무도 빨리 나태해지고 방만해지는 우리의 악한 본성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의가 되거나, 거기에 율법적으로 얽매여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의 그 어떠한 의도 주님의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추한 방해거리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들로서 아버지와 교통하고, 종으로서 주인을 응시하고 우리의 온 마음을 쏟아 놓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은 결단코 우리 자신의 의를 쌓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순간 순간 머리를 쳐드는 우리의 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는, 아버지 앞에 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다지 주님 앞에 무릎 꿇지 못하였는데도 그럭저럭 잘 되어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까? 또 많은 열매들이 맺히는 것 같습니까? 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귀결 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자기이름의 의와 영광을 위하여 사역자의 인격과는 관계없이 일하신 것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말씀대로 주의 일을 실컷 한 뒤에 버림받는 비참한 경우(고전 10:27)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만일 어떤 사역자가 기도하지 않고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어디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며, 열매는 기도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IV. 공중찬양=개인찬양(=개인기도).

지금은 주님 앞에서 찬양하고 있을, 가히 전설 적인 찬양사역자인 Keith Green은 끊임없이 기도와 영혼에 대한 열정으로 사도시대 전도자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유명한 스티브 그린 역시 집회 전 수 시간 동안 대화를 금하고 기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사역자들이 개인적인 묵상과 기도로 사역을 준비합니다.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이들은 거듭되는 사역 통해서 기도의 중요성을 피부로 절감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공동 찬양시의 모습은 결코 개인적인 찬양 시간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노래하는 자들과 전혀 다를 것 없이, 부르고 있는 찬양 곡의 내용과 분위기에 맞는 표정과 감정을 연출하는 식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놓는 (시62:8) 개인적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당신이 회중 앞에서 찬양할 때의 모습과 하나님 앞에서 개인 적으로 기도하고 찬양 드리는 모습은 일치 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보다 공중찬양시가 더 활기차고 풍성한 것으로 느껴지지는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바로 그 차이만큼 당신은 껍데기로 위장된 찬양을 해왔는지도 모릅니다.

V. 맺는 말, 제언.

기도와 찬양은 궁극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다윗의 시편들은 찬양이면서 동시에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하고 지향하는 것은

i) 공중 찬양시의 찬양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찬양만큼 순수해지는 것과

ii) 개인 찬양이 회중들 앞에서 하는 것 이상으로 생기 있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되는 일 입니다.

찬양집회가 힘을 잃어 가는 듯하고, 모이는 수가 줄어들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새로움과 기쁨이 없을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새로운 찬양 곡들과 기법을 도입하면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지금까지의 논의는 바로 여기에 대답하기 위한 것입니다. 각자 대답해 보십시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관해서 논하고, 서로 기도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심지어 자신은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얼마만큼 기도하고 있습니까?

이젠 말과 머리로가 아니라, 실제로 무릎을 꿇을 때입니다. 이 글을 읽고 찬양 사역에서 기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동의하거나 인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여기에 짐 그레함이 기도와 개인의 영적 생활과 관계에 대해 규정한 것을 찬양 사역에 알맞게 약간 수정하여 제시 합니다. (그는 이하의 항목들을 수동적으로 긍정하기 보다는 차라리 적극적으로 거부 반박해 보라고 했는데,역시 동일한 제안을 함께 드립니다.)

(1) 찬양 사역자의 영적 생활은 그의 기도의 수준을 뛰어 넘을 수 없다.

(2) 찬양 선교단(team)은 팀 내의 공동적인 기도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

(3) Team내의 공동적인 기도생활은 그 팀을 구성하는 개인의 기도생활 수준을 뛰어 넘을 수 없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기도가 줄어들고 있다면, 이는 자신의 사역에 대한 적신호인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계속되는 삶과 사역에서 무시로 무릎을 꿇어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대로 행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하십시다.

2010년 9월 2일 목요일

날 채워 주소서


날 채워주소서 날 만져주소서
날 일으키소서 지금 이 시간
끝 없는 주님의 생명수로
나의 영혼에 부으소서
날 채워주소서 날 만져주소서
날 일으키소서 주 볼 수 있게
세상의 누구도 채울 수 없는
나의 마음을 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