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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7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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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백합화 모양으로 다듬어져라. 열왕기상 7:19 “주랑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기둥머리를 백합 모양으로 할 때 백합화 모양 자체는 건물을 지탱하는 힘과 아무 관련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체 건물의 웅장함을 보겠지만 이 건물에 영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백합화 모양”이다. 건축물에서 건물의 크기는 그 건물의 아름다움으로 고려 되지 않는다. 아름다움으로 간주되는 부분은 오히려 잘 띄지 않는 부분들이다. 주를 위하여 오랫동안 수고해 오면서 많은 연단을 지난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거친 형상이 없는 것이 그 특징이다. 또한 하나님을 향하여 우격다짐으로 일하려는 모습들도 없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백합화 모양”이 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장 많이 닮은 모습이다. 예수님의 특징은 평안과 안정과 거룩함이다. 예수님께는 저돌적인 모습이 없으셨다. 이 뜻이 우리 주께 추진력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일에 치중하다가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잃는 때가 없었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징 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언제나 평안과 안정 가운데 있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일을 놓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일이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다. 따라서 눈에 띄지 않는 소자들을 돌보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주께 순종하기 위해 절대로 그 일을 놓치는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자녀들에게 “백합화 모양”이 나타날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을 연단하신다. 특히 주의 자녀들의 성품의 섬세한 부분들을 다루신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도구들을 많이 사용하신다. 가령, 고슴도치 같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거나 어려운 환경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어떤 것이던 상관없이 다 사용하셔서 우리를 “백합화 모양”으로 연단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구체적으로 일 하시는 것을 언제나 깨달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주께서는 평범한 상황들을 통해서도 깊은 영감을 주시며 우리를 “백합화 모양”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나를 연단하는 주의 사랑의 섭리에 감사하는 믿음을 가지라

2012년 3월 17일 토요일

시편 96:1-13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찌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찌어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찌어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찌어다 여호와께 돌릴찌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찌어다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할찌라 저가 만민을 공평히 판단하시리라 할찌로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은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찌로다 그리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

주께서 주시는 모든 좋은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바로 나의 삶. 이러한 인과 관계를 알아야 한다. - 신명기 묵상

2012년 3월 16일 금요일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순간에도 아멘이 된다.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할 때에 이스라엘은 아멘으로 대답해야했다.



죄는 어떤 순간에도 죄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맞지 않아도, 그 분의 죄에대한 지적이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어도, 너무 무서워 받아 들이기 힘들어도 주님의 말씀은 아멘이다.



신명기 27:13 -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산에 서고

2012년 3월 15일 목요일

“다듬지 않은 돌” - 주님을 예배할 때에 다듬지 않은 돌이 되고 있는가, 꾸며진 모습으로 나아 가는가?



내면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된 모습은 경솔하며 또한 교만한 것이다. 주님께 내 전부를 쏟으며 예배할 때 주님은 그 때에야 나의 삶을 다듬으신다.



신명기 27:6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2012년 3월 12일 월요일

삶이 연약할 때, 육체가 피곤할 때 유혹은 찾아오고 원수의 공격에 약해진다. 이런 공격에 무너진 경험이 있다. 건강할 때 죄와 싸울 힘도 강해진다. 영적으로는 주님을 의지하여 안식을 얻으며 육체로는 몸을 파괴하는 습관(과식, 과욕)을 버리고 건강을 잘 지켜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는 죄의 유혹을 끊어 버려라.



신명기 25:18 -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2012년 3월 11일 일요일

아이들에게 사과하기(2)

아이들이 말썽을 피울 때 이제는 아이들에게 사과를 한다.



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아이들이 왜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차마 야단을 칠 수 없는 나를 닮은 모습이 거기에 있다.



둘째를 통제하는 첫째 아이를 통해 내 과거의 훈육 장면을 볼 수 있다. 둘째를 통제할 때 나를 카피한 것이 분명한 훈육장면을 보노라면 무안하고 또 미안하기 그지없다. 아이가 거울처럼 보여주는 행동은 너무나도 보기에 부끄러운 분명한 내 모습이다.



거기에는 절제되지 않은 분노가 있다. 나는 아이에게 나의 설득과 때로 분노를 보여줌으로써 아이를 통제하는 것을 훈육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관을 아이에게 주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었다. 부모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와의 경험을 통해 동생이 어떤 행동을 했을때는 분노를 절제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에게 면죄부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나는 여전히 모자라고 어긋난 나의 성품이 아이에게 흘러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DNA에 깊숙히 새겨진 성품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신다.



이제 나는 문제가 생길 때 아이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주 앞에 회개한다. 내게서 흘러간 어긋난 성품을 만져 주시고 감정의 생채기를 치유해 달라고…



성령께서 주신 온유한 마음이 부어진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순간 부어진 것이며 내 인격 수련의 결과가 아니었다.성령께서 주신 것이라는 답변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는 성품의 변화이다.



굳은 감정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채워 주시는 주님을 경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2012년 3월 5일 월요일

십자가 / 지영



십자가 십자가 그 위에 나 죽었네 
그 사랑 내 속에 강 같이 흐르네



그의 생명 내 속에 그의 능력 내 안에 
그의 소망 내 삶에 나의 삶 주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