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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8일 화요일

얍복강가에서 ...

야곱의 이름의 뜻은 움켜쥔다는 말이다. 누구나 살기위해 움켜 잡는다. 물에 빠진 사람은 살기 위해서 지푸라기라도 움켜 잡으려 한다.

그가 일생을 살아가는 방법은 그렇게 자신의 꾀로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사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해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든 좋은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려는 노력은 성공을 거둘 수 있는가? 그러한 시도가 언제나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정작 우리는 무엇이 진정으로 좋은 것인지를 예측할 수 없다. 

좋은 것을 취한 일이 나쁜 일이 되고, 포기한 것이 좋은 일이 되기도 한다. 미래를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던 야곱이었다. 그런 그가 얍복강가에 홀로 남았을 때 그의 나이 여든을 넘기고 있었다. 아마도 그때, 야곱은 인생이 그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 것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는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는 그의 이름의 뜻처럼 하나님조차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신다.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그는 이스라엘로 불리웠다.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이름이다.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포장도로를 달리는 것 같이 모든 일이 평탄하기를 기대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삶은 여전히 문제가 많고, 고민거리가 많다. 제대로 되는 일은 많이 없다. 

야곱의 삶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가 움켜쥐기를 멈추었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움겨쥐는 대상이 바뀌었다. 나는 오늘도 이 땅의 일을 움켜쥐고 내 힘으로 살아가면서 그 움켜쥠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나에게 돌릴 것인지, 아니면 얍복강 가의 야곱처럼 하나님을 움켜쥘 것인지에 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삶이 아니고서야 이 땅의 문제들을 이겨낼 방법은 없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그에게 치열함이 사라졌다. 성경을 보면 그의 삶에 여전히 그를 괴롭게하는 문제들이 있었으므로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누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그의 믿음의 비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창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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